2013년 4월 1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셀트리온 회장 서정진은 유럽 허가가 끝나면 자신이 가진 셀트리온과 계열사 주식을 모두 다국적 제약사에 팔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로는 2년 동안 432거래일 가운데 412일에 공매도가 있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1
창업자가 회사를 팔겠다고 나선 이 장면은 6장에서 다시 다룹니다. 그 회사는 몇 년 뒤 유럽과 미국에서 차례로 약을 허가받았고, 창업자는 주식을 팔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전, 청주의 연탄 가게에서 시작합니다.
공무원을 그만둔 아버지의 연탄 가게에서, 장남은 무엇을 배웠을까요?
서정진은 1957년 충북 청주(옛 청원군 오창)에서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산림청 지방 공무원을 그만둔 뒤 연탄 배달과 쌀장사를 했고, 서정진은 그 일을 도우며 자랐다고 여러 매체가 전합니다.2
인천 제물포고를 나와 건국대 산업공학과에 들어갔고, 1983년에 졸업했습니다. 공장의 일하는 순서와 비용을 따져 더 낫게 바꾸는 학문입니다. 같은 대학원에서는 나중에 경영학 석사를 받았습니다.3
회사에 조언하던 외부 컨설턴트가, 어떻게 그 회사 임원이 됐을까요?
첫 직장은 1983년 삼성전기였습니다. 몇 해 뒤 기업 경영을 진단하는 한국생산성본부로 옮겨 컨설턴트로 일했습니다. 이때 대우그룹 일을 맡았다가 눈에 띄어, 김우중 회장이 그를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으로 데려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임원급 자리였습니다.4
그 대우그룹이 1997년 외환위기를 넘지 못했습니다. 1999년 대우그룹은 채권단 관리(워크아웃)에 들어가 흩어졌고, 서정진도 일자리를 잃었습니다.5
마흔이 넘어 실직한 사람이, 왜 하필 잘 모르는 바이오를 골랐을까요?
2000년, 서정진은 대우 시절 동료들과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넥솔’이라는 작은 회사를 차렸습니다.6 2024년 한 창업 대회 영상 강연에서 그는 “셀트리온은 24년 전 45세의 나이에 5,000만 원을 갖고 직원 6명과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7
무엇을 할지 찾던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바이오 회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세계 최대 바이오 회사 가운데 하나인 제넨텍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8
2002년, 미국 백신 회사 벡스젠과 서정진의 넥솔바이오텍, KT&G(당시 한국담배인삼공사) 같은 한국 투자자가 함께 인천 송도에 합작 회사를 세웠습니다. 벡스젠이 개발하던 에이즈 백신을 대량으로 만들 공장이었습니다. 회사 이름이 셀트리온이었습니다.9
만들기로 한 약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면, 그 약을 만들려고 짓던 공장은 어떻게 될까요?
2003년 2월, 벡스젠은 에이즈 백신의 북미 마지막 임상시험이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체 감염 감소 효과가 3.8%로,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었습니다.10 셀트리온이 지을 공장의 주인공이 사라진 셈이었습니다.
회사 초기 돈이 모자라 서정진이 명동 사채까지 끌어 썼다는 일화가 여러 인터뷰 기사에 소개돼 있습니다.11
길은 공장을 다른 회사의 바이오의약품(세포를 키워 만드는 단백질 약)을 대신 만드는 곳으로 바꾸는 데서 열렸습니다. 2005년 6월, 셀트리온은 미국 제약사 BMS와 관절염 약 오렌시아의 원료를 오래 맡아 만드는 계약을 맺었고, 송도 공장은 200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설비 승인을 받았습니다.12 2008년에는 코스닥 상장사 오알켐과 합치는 방식으로 주식시장에 들어왔습니다.13
특허가 끝난 비싼 바이오 약을 다른 회사가 ‘거의 똑같이’ 만들 수 있을까요?
알약은 화학식대로 합성하면 같은 약이 나옵니다. 하지만 세포가 만드는 항체 의약품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원래 약과 분자 하나하나까지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원래 약과 효과·안전성이 사실상 같다는 걸 임상으로 증명한 약을 따로 ‘바이오시밀러’라고 부릅니다.
셀트리온이 고른 약은 류마티스관절염 등에 쓰는 항체 의약품 레미케이드(성분 인플릭시맙)였습니다. 셀트리온판 이름은 램시마. 2012년 7월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 약을 허가하면서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라는 취지로 발표했습니다.14
더 큰 시험대는 유럽이었습니다. 2013년 6월 28일 유럽의약품청(EMA)은 처음으로 항체 바이오시밀러 두 가지의 승인을 권고한다고 발표했는데, 둘 다 램시마와 같은 약(하나는 호스피라가 파는 이름)이었습니다. 유럽연합의 판매 허가는 그해 9월 10일에 나왔습니다.15 발표 뒤 첫 한국 거래일인 7월 1일, 셀트리온 주가는 장이 열리자마자 당시 상한가(+15%)에 닿아 그대로 마감했습니다.24
주가를 떨어뜨리는 세력이 있다고 믿은 창업자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먼저 판 뒤 나중에 사서 갚는 거래입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이익을 봅니다. 서정진은 프롤로그의 기자회견에서 “이 세력을 조사해 주고, 방어한 나도 조사해 달라”고 했습니다.1 기자회견 날 주가는 5.1% 올랐고, 다음 날부터 나흘 동안 13~15%씩 떨어져 4월 22일 종가는 회견 날보다 46.5% 낮았습니다. 당시 코스닥의 하루 가격 제한폭은 ±15%였습니다.24 하루 가격 제한폭은 상한가·하한가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해 10월 8일,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서정진 회장과 셀트리온 등을 시세조종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증선위는 자금 조달을 원활히 하고 실적 논란에 따른 주가 급락을 막으려 세 차례 시세를 조종했다고 결론 내렸고, 회사는 주가에 인위적으로 개입한 적이 없다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16
2014년 5월 15일 서울중앙지검은 2012년 5월~2013년 1월의 거래만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보고 서 회장 등을 약식기소했고, 2011년 거래 부분은 무혐의로 처리했습니다. 이후 서 회장은 벌금 3억 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습니다.17 금융당국이 그가 말한 불법 공매도 세력을 확인했다는 발표는 없었습니다.
지분 매각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셀트리온은 2014년 7월 2일 공시에서 투자자들의 제안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매각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18
유럽 다음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약 시장, 미국이었습니다. 허가가 나온 날 주가는 올랐을까요?
2016년 4월 5일(미국 시간) FDA는 램시마를 ‘인플렉트라’라는 이름으로 승인했습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승인된 바이오시밀러였습니다. 셀트리온 주가는 그 전 6거래일 연속으로 올랐지만, 소식이 전해진 4월 6일에는 7.3% 내렸습니다.19 2018년 11월에는 혈액암 치료제 리툭산의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도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19
2018년 2월 9일 셀트리온은 코스닥을 떠나 유가증권시장(코스피)으로 옮겨 상장했습니다.13 2020년 코로나19가 번지자 서정진은 3월 23일 장 마감 직후 온라인 간담회를 열어 항체 치료제 후보 물질 300종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20 이 치료제 렉키로나는 2021년 2월 5일 한국에서 조건부 허가를, 그해 11월 유럽 허가를 받았습니다.20
그리고 서정진은 예고한 대로 2020년 12월 31일 회장직을 내려놓고 명예회장이 됐습니다. 2021년 3월 주주총회에서는 등기임원 자리에서도 물러나며, 회사가 어려울 때 ‘소방수’로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21 공교롭게도 그가 물러나기 몇 주 전인 2020년 12월 7일이 셀트리온 주가가 마지막으로 최고 종가를 새로 쓴 날입니다.24
약을 만드는 회사와 그 약을 파는 회사가 따로 상장돼 있으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셀트리온이 만든 약은 계열사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사들여 세계에 팔았습니다. 두 회사의 거래와 회계는 오랫동안 시장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2022년 3월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는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의 회계 처리 위반에 대해 감사인 지정, 담당 임원 해임 권고(헬스케어), 과징금(세 회사와 임원 합계 약 139억 원) 등을 의결했습니다. 금융위는 세 회사와 임직원을 검찰에 고발·통보하지 않았고 거래정지 심사 대상도 아니라고 밝혔습니다.22
주가는 오르내리면서도 2022년 3월 조치 무렵보다 낮아졌습니다. 2023년 3월 서정진은 셀트리온 이사회 공동의장으로 돌아왔고,21 그해 8월 17일 셀트리온이 셀트리온헬스케어를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습니다. 헬스케어 1주에 셀트리온 0.4492620주를 주는 조건이었고, 합병은 12월 28일 이뤄졌으며 새 주식은 2024년 1월 12일 상장됐습니다.23 서정진이 2000년에 차린 넥솔은 2009년 셀트리온헬스케어로 이름을 바꿨으니, 이 합병으로 첫 회사와 셀트리온이 하나가 된 셈입니다.6 2018년 이후 주가가 가장 낮았던 날은 그 사이인 2023년 10월 5일로, 2020년 12월 고점보다 64.8% 낮았습니다.24
바로 그달 20일(미국 시간) FDA는 램시마를 피하주사로 바꾼 ‘짐펜트라’를 바이오시밀러가 아닌 신약 경로로 승인했습니다.19
약을 미국에 팔던 회사가, 왜 미국에 직접 공장을 샀을까요?
2025년 9월 23일 셀트리온은 미국 일라이 릴리의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공장을 약 4,600억 원에 사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의약품 관세 위험에 대비하려는 결정이라고 설명했고, 인수는 2026년 초에 끝났습니다.25 2025년 연결 매출은 4조 1,625억 원, 영업이익은 1조 1,685억 원으로 처음 1조 원을 넘었습니다.26
회사는 사들인 자기 주식을 없애는 소각도 이어 가고 있습니다. 2026년 4월에는 자사주 약 911만 주(발행 주식의 약 4%)를 소각했습니다.27 자사주를 사서 없애면 주주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래도 주가는 아직 2020년 12월 고점을 넘지 못했습니다. 2026년 10월 20일 종가(한국거래소)는 그 고점보다 40.2% 낮습니다.24 연탄 가게 장남이 세운 회사는 매출로는 몇 배가 됐지만, 주가가 남긴 기록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아래 표는 2018년 1월 2일부터 2026년 10월 20일까지의 수정 종가(주식배당 등을 반영해 과거 가격을 고친 값)로 셌습니다. 셀트리온은 거의 해마다 주식배당을 해서, 옛 날짜의 수정 종가는 그날 실제 거래된 가격보다 낮게 보입니다.24
| 항목 | 값 | 설명 |
|---|---|---|
| 최고 종가 경신일(2018-01 이후 기준) | 14일 | 2018년 11일, 2020년 3일. 2019년과 2021~2026년은 0일. 마지막은 2020-12-07 수정 종가 328,493원. 2018년 이전 고점까지 넣으면 15일24 |
| 최고점 대비 최대 낙폭 | −64.8% | 고점 2020-12-07, 바닥 2023-10-05. 2026-10-20까지 고점을 다시 넘지 못했습니다(그날 −40.2%) |
| 하루 최대 상승 | +23.8% | 2020-03-31. 서정진이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개발 계획을 밝힌 3월 23일 간담회 6거래일 뒤입니다. 이날 하나의 이유를 짚은 보도는 찾지 못했습니다 |
| 잠정실적 공시일 상승 | 17 / 36회 | 2018-01 ~ 2026-10. 장 마감 뒤 공시는 다음 거래일, 장 시작 전·장중 공시는 그날 종가로 셌습니다. 2018-08-09와 2020-05-11은 0.00%(보합)입니다. 시장 지수(2018-02-09 이전은 코스닥) 등락을 뺀 값으로도 36번 중 17번이 플러스였습니다 |
| 해외 첫 허가 뒤 첫 거래일 상승 | 3 / 5회 | 램시마 유럽 권고(2013-07-01 +14.9%), 인플렉트라 FDA(2016-04-06 −7.3%), 트룩시마 FDA(2018-11-29 +0.4%), 렉키로나 유럽(2021-11-15 +9.1%), 짐펜트라 FDA(2023-10-23 −1.1%). 시장 지수 등락을 빼지 않은 값입니다 |
숫자를 세는 기준은 계산 방법에 모아 두었습니다. 같은 시리즈의 TSMC 이야기는 남의 약 대신 남의 칩을 만들어 주는 회사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셀트리온의 첫 10년과 닮았습니다. 이 표는 분기 실적 공시 뒤 갱신합니다.24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 엔비디아 창업 스토리 — 접시닦이 소년 젠슨 황의 33년 · 테슬라 역사 — 남아공 책벌레 소년이 운전대를 잡기까지 · AMD 주가 역사, 장난감 자동차를 뜯어보던 아이 리사 수 · 팔란티어 창업 스토리 — 난독증 철학 박사 알렉스 카프 · TSMC 역사, 쉰다섯에 다시 시작한 모리스 창 · 삼성전자 주가 역사, 도쿄 선언 때 열네 살이던 이재용 · SK하이닉스 역사 — 최태원이 산 채권단의 회사 · 현대차 역사 — 소 판 돈 들고 나선 정주영과 손자 정의선
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과거 기록은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림은 실제 장면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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