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일, 대만 컴퓨텍스 전시장의 SK하이닉스 부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차세대 메모리 HBM4E를 새긴 둥근 실리콘 웨이퍼에 펜으로 글씨를 남겼습니다. “Please Make More.” 제발 더 만들어 달라는 뜻입니다.1
같은 날 부스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웨이퍼 생산능력을 5년 안에 두 배로 늘리겠다고 말했습니다.1 세계에서 가장 비싼 AI 칩을 만드는 회사가 더 달라고 조르는 메모리 회사. 그런데 25년 전 이 회사는 빚을 갚지 못해 은행들이 관리하던 회사였고, 미국 경쟁사에 팔릴 뻔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회사를 산 사람, 최태원에서 시작합니다.
경영을 물려받을 아들에게 아버지는 왜 경영학 대신 이공계를 권했을까요?
최태원은 1960년 SK(당시 선경)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재벌가 아들은 흔히 경영학을 공부하지만, 아버지 최종현 회장은 이공계 진학을 권했습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나중에 경영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최태원은 고려대 물리학과를 나와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습니다.2
아버지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1978년 최종현 회장은 경북 구미에 선경반도체를 세웠지만, 2차 오일쇼크로 돈줄이 막히면서 1981년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3 그때 스물한 살이던 아들이 30년 뒤 이 꿈을 다시 꺼내게 됩니다.
지금의 SK하이닉스는 원래 누구의 회사였을까요?
SK하이닉스의 뿌리는 1983년 현대그룹이 세운 현대전자산업입니다. 전자 사업 자체가 처음이었던 현대는 경기도 이천에 공장을 지어 1984년 10월에 완공했고, 그해 12월 16K S램 시험생산에 성공했습니다. 회사는 이를 ‘국내 최초’라고 소개합니다.4
1997년 외환위기 뒤 정부는 겹치는 대기업 사업을 서로 맞바꾸게 하는 이른바 ‘빅딜’을 밀어붙였고, 1999년 현대전자는 LG반도체를 흡수합병했습니다. 회사는 커졌지만 합병 과정에서 빚도 크게 늘었습니다. 외환위기 때 낸 회사채 만기까지 돌아오자 회사는 2001년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 이름을 ‘하이닉스반도체’로 바꾸고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5
빚을 갚지 못하는 회사를 은행들이 대신 운영하면, 그 회사는 어떻게 될까요?
2001년 10월 하이닉스는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에 들어갔습니다.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한데 모여 회사를 관리하는 이른바 워크아웃입니다. 은행들은 두 차례에 걸쳐 빌려준 돈 4조 9천억 원을 주식으로 바꾸고, 1조 4천억 원을 깎아 줬습니다.6
2002년 4월, 하이닉스는 메모리 사업을 미국 마이크론에 넘기는 조건부 양해각서를 맺었습니다(22일 발표). 4월 30일까지 채권단과 양쪽 이사회가 승인해야 효력이 생기는 조건이었습니다. 채권단은 동의했지만, 4월 30일 하이닉스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부결했고 매각은 멈췄습니다.7
팔리지 않은 회사는 혼자 살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새 장비를 살 돈이 없자 엔지니어들은 쓰던 장비로 한 단계 더 미세한 제품을 만드는 ‘블루칩 프로젝트’에 매달렸습니다. 회사는 이 방법으로 기존의 3분의 1 투자로 원가 경쟁력을 얻었다고 설명합니다.8 2005년 7월, 하이닉스는 예정보다 1년 반 이르게 공동관리를 끝냈습니다. 그래도 회사의 최대 주주는 여전히 은행들이었습니다.6
반도체 경기가 바닥일 때 반도체 회사를 사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최태원은 1990년대 초 그룹에 들어와 일했고, 1998년 8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엿새 뒤인 9월 1일, 서른여덟 살에 SK 회장이 됐습니다.9
2011년 7월 8일,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를 냈습니다. 당시 메모리 값은 떨어지고 있었고, 통신·정유 회사가 반도체 회사를 사서 무엇을 얻느냐는 걱정이 그룹 안팎에서 컸다고 전해집니다.10 그해 11월 14일 SK텔레콤은 채권단이 가진 주식과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합쳐 지분 약 21%를 3조 4,267억 원에 사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 날 최태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11
“현재 반도체 시황이 어렵지만 하이닉스의 우수한 기술력과 SK의 강한 기업문화로 합심해 글로벌 성공 스토리를 만들고 국가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적자를 내는 회사에 돈을 더 쏟아붓는 건 무모한 일일까요?
2012년 2월 14일 SK텔레콤은 대금 3조 3,747억 원을 내고 하이닉스 지분 21.05%를 손에 넣었습니다. 2001년 공동관리에 들어간 지 10년 4개월 만에 은행들의 손을 떠난 셈입니다. 같은 날 이사회는 최태원을 대표이사 회장으로 뽑았습니다. 전날 임시주주총회에서는 그가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12 회사 이름은 그해 SK하이닉스로 바뀌었습니다.4
그해 SK하이닉스는 매출 10조 1,620억 원에 영업손실 2,270억 원을 냈습니다.13 반도체 경기가 나빠 대부분의 회사가 투자를 줄이던 때였지만, SK하이닉스는 투자를 전년보다 10% 많은 3조 8,500억 원으로 늘렸습니다.14 이듬해인 2013년 매출은 14조 1,650억 원, 영업이익은 3조 3,800억 원으로 당시 사상 최대였습니다.13
회장 자신은 이 시기 경영 일선을 떠나 있었습니다. 계열사 자금 횡령으로 2013년 1월 1심에서 법정구속돼 2014년 2월 27일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됐고, 그해 3월 SK하이닉스 등기이사에서도 물러났다가 201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15
찾는 사람이 거의 없던 메모리가 어떻게 회사의 운명을 바꿨을까요?
2013년 12월 SK하이닉스는 미국 AMD와 함께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얇게 간 D램 칩 여러 장을 아파트처럼 쌓고, 칩마다 수천 개의 작은 구멍(TSV)을 뚫어 위아래를 한 번에 잇는 방식입니다. 길이 넓어지니 한 번에 훨씬 많은 데이터가 오갈 수 있습니다. 회사는 이를 ‘업계 최초’라고 소개했습니다.16
HBM을 처음 단 제품은 2015년에 나온 AMD 그래픽카드였습니다.16 하지만 값이 비싸고 만들기 어려워, 한동안 쓰는 곳이 많지 않은 틈새 제품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2021년 10월, SK하이닉스는 4세대 HBM3를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7개월 뒤인 2022년 6월 9일, 엔비디아에 HBM3를 공급하며 양산을 시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엔비디아의 새 AI 칩 H100에 들어가는 메모리였습니다. 당시 노종원 사업총괄 사장은 “엔비디아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프리미엄 D램 시장에서 톱클래스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말했습니다.17 그보다 두 달여 앞선 3월 30일에는 1994년 엔지니어로 입사한 곽노정 사장이 대표이사가 됐습니다.18
새 무기를 손에 쥐었는데도 왜 회사는 큰 적자를 냈을까요?
HBM 양산을 시작한 2022년 하반기부터 메모리 시장이 얼어붙었습니다. 2023년 SK하이닉스는 매출 32조 7,657억 원에 영업손실 7조 7,303억 원, 순손실 9조 1,375억 원을 냈습니다. 그래도 같은 해 HBM3 매출은 전년보다 다섯 배 이상 늘었습니다.19
주가에도 긴 겨울이 왔습니다. 우리 기록으로 SK하이닉스는 2021년 2월 25일 종가 148,500원을 찍은 뒤 2022년 12월 29일 75,000원까지 −49.5% 내려갔습니다. 최고 종가를 다시 넘은 날은 2024년 2월 13일로, 1,083일 만이었습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최고 종가를 새로 쓴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20
적자 2년 뒤, SK하이닉스의 매출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2024년 3월 19일 SK하이닉스는 5세대 HBM3E를 대규모로 양산해 그달 말부터 공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회사는 고객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엔비디아로 알려졌습니다.21 2024년 매출은 66조 1,930억 원, 영업이익은 23조 4,673억 원으로 메모리 호황기였던 2018년 기록을 넘었습니다. 2025년에는 매출 97조 1,467억 원, 영업이익 47조 2,063억 원을 냈고, 연간 영업이익에서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앞섰다고 보도됐습니다.22
2026년에는 한 분기 매출이 2012년 한 해 매출의 다섯 배를 넘었습니다. 1분기 매출 52조 5,763억 원, 2분기 79조 3,187억 원이었고, 2분기 영업이익률은 76%였습니다.23 7월에는 미국 증시에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했습니다. 이를 위해 새 주식 1,779만 주를 발행해 시설자금 약 40조 원을 마련했습니다.24
2012년 2월 인수 대금을 내던 날 SK하이닉스 종가는 27,550원이었습니다. 2026년 6월 22일 종가는 2,919,000원으로, 그 106배였습니다.20
사상 최대 실적을 낸 해에, 주가는 얼마나 흔들렸을까요?
2026년 6월 22일 최고 종가 뒤 SK하이닉스 주가는 크게 출렁였습니다. 7월 13일 하루에 −15.4% 내렸고, 7월 28~29일에는 코스피·코스닥에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시장 전체 거래를 잠시 멈추는 장치)가 걸렸습니다. 2분기 실적 발표일인 29일, 실적은 사상 최대였지만 증권사 예상치에는 못 미쳤고 SK하이닉스는 −9.6% 내렸습니다. 이틀 뒤인 7월 31일에는 하루 +29.95%, 가격제한폭 끝인 상한가로 마쳤습니다. 이날 코스피도 +17.9%로 사상 가장 크게 올랐습니다.25 2026-10-20 종가 1,211,000원은 6월 고점보다 58.5% 낮습니다.20
메모리는 값이 오를 때 크게 벌고, 내릴 때 크게 잃는 사업입니다. 2023년의 적자는 불과 3년 전 일입니다. 그리고 SK하이닉스 HBM의 가장 큰 고객은 엔비디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엔비디아 실적이 나온 다음 한국 거래일 SK하이닉스 주가를 따로 적어 둡니다. 최근 5번은 모두 올랐고, 코스피 등락을 빼면 5번 중 4번 플러스였습니다. 2018년 이후 37번 전체로 넓히면 20번 올랐습니다. 엔비디아 발표는 한국 시간 새벽에 나오고, 그날 한국 장은 같은 날짜 미국 장보다 먼저 끝나므로 한쪽이 다른 쪽을 움직였다고 읽을 수는 없습니다.26 엔비디아 쪽 이야기는 엔비디아 창업 스토리에, 같은 HBM 공급망의 다른 축인 파운드리 이야기는 TSMC 역사에 있습니다.
아래 표는 2018년 1월 2일부터 2026년 10월 20일까지 한국거래소 종가만 놓고 센 값입니다. 2000년부터 보면 가장 깊은 낙폭은 −99.5%(2000-01-28 → 2003-03-26, 합병·감자를 반영한 수정 주가)이고, 하루 최대 상승은 이 기간을 넣어도 2026-07-31입니다.20
| 항목 | 값 | 설명 |
|---|---|---|
| 최고 종가 경신일(2018-01 이후 기준) | 127일 | 2022년과 2023년은 0일, 2019년은 1일. 2026년에만 40일. 마지막은 2026-06-22 2,919,000원 |
| 최고점 대비 최대 낙폭 | −58.5% | 고점 2026-06-22, 지금까지 가장 낮은 종가는 마지막 날인 2026-10-20(1,211,000원). 아직 끝나지 않은 낙폭입니다. 2018~2025년만 보면 −49.5%(2021-02-25 → 2022-12-29) |
| 하루 최대 상승 | +29.95% | 2026-07-31, 상한가.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7/28·29) 이틀 뒤. 2018~2025년에는 2020-03-24의 +13.4% |
| 잠정실적 공시일 상승 | 17 / 35회 | 2018-01 ~ 2026-07. 공시는 대개 장 시작 무렵이라 그날 종가로 셌습니다. 코스피 등락을 빼도 35번 중 17번 플러스 |
| 엔비디아 실적 다음 한국 거래일 상승 | 5 / 5회 | 최근 5번(2025-08 ~ 2026-08): +3.3%·+1.6%·+8.0%·+11.2%·+2.5%. 코스피를 빼면 4번 플러스. 2018년 이후 37번 중 20번 |
| 코스피와 비교 | 15.8배 / 2.2배 | 2018-01-02 종가 대비 2026-10-20 종가. SK하이닉스 76,600 → 1,211,000원, 코스피 2,479.65 → 5,552.74 |
숫자를 세는 기준은 데이터와 검수 방법에, 7월 31일 같은 날의 뜻은 가격제한폭(상한가·하한가)과 서킷브레이커 글에 풀어 두었습니다. 이 표는 매 분기 실적 발표 뒤 갱신합니다.20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 엔비디아 창업 스토리 — 접시닦이 소년 젠슨 황의 33년 · 테슬라 역사 — 남아공 책벌레 소년이 운전대를 잡기까지 · AMD 주가 역사, 장난감 자동차를 뜯어보던 아이 리사 수 · 팔란티어 창업 스토리 — 난독증 철학 박사 알렉스 카프 · TSMC 역사, 쉰다섯에 다시 시작한 모리스 창 · 삼성전자 주가 역사, 도쿄 선언 때 열네 살이던 이재용
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과거 기록은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림은 실제 장면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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