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0월 8일 아침 9시 30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TSM’이라는 새 종목이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대만의 반도체 회사 TSMC였습니다. 회사는 이날을 대만 기업 최초의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1
창업자 모리스 창은 2007년 인터뷰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이 상장일을 들면서도, 느낀 기쁨만 보면 TI 시절 어느 날 밤도 그에 못지않다고 말했습니다. 공장 수율을 0에서 끌어올린 그 밤 이야기는 3장에 나옵니다.2 이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전, 전쟁을 피해 짐을 싸던 한 소년에서 시작합니다.
열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닌 아이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모리스 창은 1931년 7월 10일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태어났습니다.3 어린 시절 내내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중일전쟁이 터지자 광저우에 공습이 시작됐고, 어머니와 함께 홍콩으로 피했습니다.
홍콩도 오래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1941년 진주만 공격이 있던 날 일본군이 홍콩도 공격했고, 2주 동안 총성을 들은 뒤 1년 동안 점령 아래 살았습니다. 가족은 다시 충칭으로 갔지만 그곳에서도 공습을 겪었습니다. 전쟁이 끝나 상하이로 돌아왔는데, 1948년 내전이 가까이 오자 또 떠나야 했습니다.2
그는 2007년 인터뷰에서 열여덟 살까지의 배경을 “전쟁, 가난, 불의”라고 요약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개인적 교훈은 열심히 공부하고, 나중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2
박사 자격시험에 떨어진 공학도에게, 그 실패는 끝이었을까요?
1949년 열여덟 살의 창은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신입생이 됐습니다. 1년 뒤 그는 졸업하고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더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MIT로 옮겼습니다. 기계공학으로 1952년 학사, 1953년 석사를 받았습니다.24
박사 과정으로 가려던 계획은 막혔습니다. 박사 자격시험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회사로 눈을 돌렸고, 받은 네 곳의 제안 가운데 반도체를 만들던 실베이니아를 골랐습니다. 1955년이었습니다. 그는 2007년 인터뷰에서 그곳이 아주 운 좋게 고른 곳이었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혼자 공부하며 트랜지스터 물리를 익혔습니다.2
만드는 족족 불량이 나오는 공장을 맡으면,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요?
1958년 창은 빠르게 크던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로 옮겼습니다. 처음 맡은 트랜지스터 생산 라인은 수율이 거의 0이었습니다. 수율은 만든 제품 가운데 쓸 수 있는 제품의 비율입니다. 그는 온도와 압력 같은 공정 조건을 물리 계산에 맞춰 하나씩 바꿨고, 어느 날 수율이 25~30%로 올라섰습니다. 그날 밤 너무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2
TI는 그에게 월급을 그대로 주면서 박사 공부를 시켜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자격시험을 높은 점수로 통과했고, 1964년 스탠퍼드에서 전기공학 박사가 됐습니다.4
그 뒤로 1967년 집적회로 사업 총괄, 이어서 TI 반도체 사업 전체를 맡는 그룹 부사장이 됐습니다. 생산 경험이 쌓일수록 원가가 내려간다는 ‘학습 곡선’에 맞춰 시장이 요구하지 않아도 분기마다 가격을 내렸고, 점유율이 계속 늘었다고 그는 회고했습니다. 신제품 개발 같은 다른 전략도 함께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후 소비자 제품 부문으로 옮겨 교육용 기기 ‘스픽 앤 스펠’이 나오는 것을 지켜봤지만, 부문 실적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수석부사장 직함의 참모직으로 밀려났고, 2년 넘게 고민한 끝에 1983년 TI를 떠났습니다.2
연구도, 설계도, 영업도 약한 나라가 반도체로 이기려면 어디서 싸워야 할까요?
TI를 나온 창은 뉴욕의 제너럴 인스트루먼트에서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로 1년 남짓 일했습니다. 인수와 매각을 되풀이하는 회사 방식이 맞지 않아 다시 그만뒀을 때, 대만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1985년 당시 행정원장(총리) 위궈화가 그를 대만 최대 산업기술 연구기관인 공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으로 불렀습니다.24
도착하고 몇 주 뒤, 정무위원 리궈딩이 그를 불러 반도체 회사를 세울 계획을 며칠 안에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창은 대만이 가진 것을 따져 봤습니다. 연구개발, 칩 설계, 영업, 특허는 모두 약했습니다. 그나마 기대할 만한 것은 공장에서 웨이퍼를 만드는 능력뿐이었습니다.2
그래서 나온 답이 ‘퓨어플레이 파운드리’입니다. 자기 칩은 설계하지 않고, 남이 설계한 칩을 주문받아 만들어 주기만 하는 회사입니다. 그는 2007년 인터뷰에서 이 선택을 “가장 덜 나쁜 선택”이라고 불렀습니다. 1987년 2월 21일, 쉰다섯 살의 창은 TSMC를 세웠습니다.25
자기 공장이 있는 회사들에게 ‘남의 칩을 만들어 주는 공장’은 어떻게 보였을까요?
창의 기억으로는 업계 반응이 아주 나빴습니다. “대만이 뭘 하겠다는 거야? 모리스 창은 뭘 하는 거야?” 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공장 없이 설계만 하는 회사, 곧 ‘팹리스’가 거의 없었습니다. 큰 회사들은 자기 공장이 모자랄 때만 주문을 맡기고, 공장이 늘면 주문을 거둬들일 것이 뻔했습니다.2
투자자 모집도 쉽지 않았습니다. 창은 2024년에 낸 자서전 하권에서 인텔에도 투자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고 적었습니다.6 그는 2007년 인터뷰에서 네덜란드의 필립스를 ‘투자할 뜻이 있던 유일한 큰 투자자’라고 불렀습니다.2 설립 자본은 대만 정부 개발기금이 48.3%, 필립스가 27.5%, 대만 민간 기업들이 나머지를 맡았습니다.7
첫 몇 해는 힘들었습니다. 첫 고객은 큰 회사들이었지만 주문은 대부분 그들이 넘겨 주는 남는 물량이었습니다. 창은 2007년 인터뷰에서 1987년과 1990년 두 해 적자를 냈다고 말했습니다.2 투자를 거절했던 인텔은 TSMC가 생긴 지 1년 안에 사장이 회사를 찾아왔고, 1990년부터 주문을 맡기기 시작했습니다.6
공장이 없어서 창업을 못 하던 엔지니어들에게 공장을 빌려주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창은 TI와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시절, 회사를 나와 창업하고 싶어 하는 칩 설계자를 많이 봤습니다. 그들을 막은 것은 공장을 지을 큰돈이었습니다. TSMC가 공장을 대신 맡으면 설계자들이 회사를 세우고, 그 회사들이 TSMC의 고객이 될 것이라고 그는 기대했습니다.2
1991년 무렵부터 팹리스 회사가 빠르게 늘었습니다. 창은 2007년 인터뷰에서 1991년 이후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2 TSMC는 1994년 9월 5일 대만 증시에, 1997년 10월 8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습니다.5
2005년 7월, 창은 CEO 자리를 차이리싱에게 넘기고 회장 일만 맡았습니다. 일흔세 살이었습니다.8
은퇴했던 창업자는 4년 만에 다시 CEO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해 회사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2008년 금융위기로 반도체 주문이 급감하자 TSMC는 2009년 초 성과 평가를 근거로 직원들을 내보냈습니다. 해고된 직원들은 창의 집 앞에서 농성했습니다. 그해 5월 창은 평가 제도를 잘못 적용했다며, 해고한 직원들에게 돌아오라고 했습니다.9
한 달 뒤인 2009년 6월, 이사회는 창을 다시 CEO로 세웠습니다. 일흔일곱 살이었습니다. 회사는 해고 문제와 이 인사가 관련이 없다고 밝혔습니다.10
이듬해 큰 기회가 저녁 식탁에서 왔습니다. 창의 자서전 하권에 따르면 2010년 11월 9일, 폭스콘 창업자 궈타이밍이 애플의 제프 윌리엄스를 데리고 창의 집에 왔습니다. 윌리엄스는 애플이 직접 설계한 칩을 TSMC가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몇 해 뒤부터 TSMC는 아이폰 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11
창업자가 회사를 떠나도 회사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2013년 11월, 창은 다시 CEO에서 물러나 회장만 맡았습니다. 류더인과 웨이저자 두 사람이 공동 CEO가 됐습니다.12 자서전 하권에 따르면, 그 무렵 창은 엔비디아의 젠슨 황에게 TSMC CEO를 맡아 달라고 두 번 제안했고, 젠슨 황은 이미 일이 있다며 사양했습니다.13
2018년 6월 5일, 창은 여든여섯 살에 회장에서 물러났습니다. 류더인이 회장, 웨이저자가 CEO가 됐습니다.14
창이 떠난 해 1조 315억 신대만달러였던 매출은 2025년 3조 8,091억 신대만달러(약 1,214억 달러)가 됐습니다. 2025년 주주 몫 순이익은 1조 6,976억 신대만달러입니다.15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경쟁자는 삼성전자입니다. 삼성전자는 2022년 6월 30일, 트랜지스터의 전류 통로를 사방에서 감싸는 GAA 구조를 쓴 3나노 공정으로 칩 생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하며 이를 세계 처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집계로 2026년 2분기 파운드리 매출 점유율은 TSMC 72.5%, 삼성전자 5.9%입니다.16
공장이 대만에 몰려 있다는 것은 강점일까요, 위험일까요?
은퇴한 뒤에도 창은 공개 석상에서 업계를 향해 말을 했습니다. 2022년 12월 미국 애리조나 공장 장비 반입 행사에서 그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은 거의 죽었다”고 말했습니다.17 TSMC는 2025년 3월 미국 투자 규모를 모두 1,650억 달러로 늘린다고 발표했고, 여기에는 칩 여러 개를 하나로 묶는 첨단 패키징 공장 2곳이 들어 있습니다.18 패키징 소재로 거론되는 유리기판 이야기는 유리기판 테마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TSMC는 미국에 내는 연차보고서(20-F)의 위험 요인에, 과거 대만과 중국 본토 관계의 일부 변화를 금융시장이 TSMC를 포함한 대만 기업 주가를 끌어내릴 계기로 삼은 적이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19
창은 1998년 자서전 상권을 냈고, 26년 뒤인 2024년 11월 하권을 냈습니다. 2026년 그는 아흔다섯 살입니다. 그는 2014년 스탠퍼드 대담에서 아직 파이프를 피운다고 말했고, 장상이 전 공동 최고운영책임자는 회의 때 그가 파이프로 책상을 두드렸다고 회고했습니다.20
아래 표는 2018년 1월 2일 이후 종가만 놓고 센 값입니다. 1997년 뉴욕 상장 이후 전체로 넓히면 2000-02-03 고점에서 2002-10-09 바닥까지 −84.6%가 빠졌고, 하루에 가장 많이 오른 날은 2000-10-19의 +22.7%입니다.21
| 항목 | 값 | 설명 |
|---|---|---|
| 최고 종가 경신일(2018-01 이후 기준) | 158일 | 2023년은 0일, 2022년은 2일. 마지막은 2026-10-05 $485.80. 2018년 이전 고점까지 넣으면 156일21 |
| 최고점 대비 최대 낙폭 | −56.5% | 고점 2022-01-14, 바닥 2022-11-03. 고점을 다시 넘은 날은 2024-03-04 |
| 하루 최대 상승 | +12.7% | 2020-07-27. 인텔이 7나노 공정 지연을 발표한 뒤 둘째 거래일(첫날 +9.7%) |
| 실적 발표일 상승 | 8 / 14회 | 2023-07 ~ 2026-10. 2025-04-17은 +0.05%로 보합에 가깝습니다 |
| 실적 발표 뒤 첫 한국 거래일 삼성전자 상승 | 4 / 6회 | 코스피 등락을 뺀 값으로는 6번 중 5번 플러스. TSMC 실적은 대만 시간 오후, 한국 장 마감 직전에 나와 같은 날 한국 장에는 일부만 반영될 수 있으므로 다음 한국 거래일을 셌습니다 |
숫자를 세는 기준은 계산 방법에, 거래일을 셀 때 쓰는 미국 휴장일은 2026 미국 증시 휴장일에 모아 두었습니다. 이 표는 매 분기 실적 발표 뒤 갱신합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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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과거 기록은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림은 실제 장면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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